우리 곁의 문화재-<8>인조반정의 큰 축 창의문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양식

김효선 기자 | 입력 : 2019/03/13 [09:52]

(팝콘뉴스=김효선 ㆍ이지은  기자) 안녕하세요 팝콘뉴스의 김효선 기자입니다.

 

이번 우리 곁의 문화재는 인조반정의 큰 축을 담당했던 창의문 앞에 나와있습니다.

 

창의문에 어떤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지 알아보러 갈까요?

 

창의문은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의 하나로 창건되어 문의 명칭을 얻었습니다.

 

창의문의 형태는 한양도성 4소문 중 서북쪽에 있는 문으로 북쪽의 등성 시설은 일반적인 ‘ㄷ‘자 형태이지만 남쪽은 낮은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었습니다.

 

남쪽 낮은 담장을 활용한 ’여장‘은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없는 전돌로 축조돼 있고, 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1623년 인조반정 때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았던 역사적 무대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에 타 없어졌으나 18세기에 준공되어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겨 문루 내부에 걸어 놓았습니다.

 

북한(北漢) ·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閉門)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에 다시 열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창의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8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쌓은 성벽인 ‘육축’은 숭례문, 흥인지문처럼 네모난 장대석으로 축조했고 내부에 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등성 시설을 설치했습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서울 창의문’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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