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은 노조와의 교섭 응하라”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노조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신영호 기자


(팝콘뉴스=신영호 기자)“노동조합 설립 과정이 1,2년이고요.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지가 1년 가까이 됐습니다. 고용노동부가 교섭요구를 거부하는 박근태 사장을 비롯해 사측을 검찰에 송치한 건 환영할 일입니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에 자리잡은 택배노조 사무실에서 진행된 ‘팝콘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사건을)조속히 처리해 줘야 한다”며 “교섭회피뿐 아니라 블랙리스트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측의 불법행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시간 중노동’ 택배기사는 무늬만 개인사업자


김 위원장이 이렇게 “엄정한 사법 처리”를 촉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 위원장은 원래 오전 7시에 출근해 저녁때쯤이면 귀가하는 평범한 택배기사였고, 동료 택배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택배는 크게 보면 분류와 배송으로 나뉘는데, 전국 각 지역에서 집하된 택배 물량은 대전, 옥천 등에 있는 축구장 40배 크기인 허브터미널로 모아진다.

허브터미널은 지역별로 배송할 물건을 나누는 1차 분류 시설로, 이곳에서 분류된 택배 물량은 서브터미널로 보내진다.

보통 축구장 반 크기인 서브터미널은 전국의 시군구별로 조성돼 있고, 택배기사들은 오전에 이곳으로 출근해 배송지로 싣고 갈 물량을 12시까지 재분류한 뒤 오후에 배송에 나간다. 일찍 끝나면 오후 6시 이전에라도 귀가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택배기사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집하와 1ㆍ2차 분류, 그리고 배송으로 짜여진 하루 일과가 물샐 틈 없이 진행돼야 한다. 예를 들면 허브터미널에서 분류 작업이 늦어지면 지체된 시간만큼 서브터미널 분류 작업 시간도 길어진다. 이렇게 되면 택배기사들은 배송을 나가야 할 오후 시간에도 대기해야 한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분류작업을 오전 10시 정도에 끝낸 뒤 배송하고 나면 저녁 때 집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다”며 “그런데 CJ가 2011년에 대한통운을 인수합병하면서 분류작업 시간이 오후 1시, 2시까지 자꾸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물량이 증가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1~2년이 지나도 반복이 됐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며 “알고 보니 회사가 자기 영업이익 올리기 위해 분류 인력을 줄였고, 이 때문에 택배기사들의 업무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CJ대한통운은 비용 절감 통해 영업이익 짜내”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이들은 법적으로 근로기준법이 보호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노동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한다. 원청-대리점-택배기사로 이뤄진 계약 구조에서 스스로가 을도 아니고 정도 아닌 맨 끝에 위치한 노예라고 자조한다고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회사가 터미널 등 인프라 시설을 축소하고 분류 인력을 100명에서 90명으로 줄이게 되면, 회사는 비용이 절감돼 영업이익을 더 올리게 된다. 반면 택배기사는 수익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늘어난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 김태완 위원장은 “CJ대한통운 부당노동행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검찰이 관련 수사를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사진=팝콘뉴스) ©신영호 기자

김 위원장은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점에 대해 원성이 높았고, 그러던 차에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 2016년 초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다”며 “밴드를 통해 소통을 해 보니 자기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터미널이 다 그러고 있었고 ‘아 이건 회사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문제구나’라고 깨닫게 되면서 모임을 시작했다”고 했다.

네이버 밴드 활동과 택배기사 모임은, 2016년 11월 ‘오전 12시 이후엔 분류작업을 거부’한다는 택배기사들의 집단운동으로 이어졌다.

택배기사들의 집단행동은 회사의 눈에 가시였다는 게 김 위원장의 기억이다.

김 위원장은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이를 주도했던 기사들과 계약했던 대리점을 폐쇄시키는가 하면 기사들의 재취업 길을 막았다”며 “이것이 2016년 11월부터 시작된 동부이천 대리점 블랙리스트 사건”이라고 했다.

이어 “택배기사들은 해고자를 보면서 분노하게 되고 ‘아 밴드나 동호회 수준으로는 우리가 뭘 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갖기 시작했다”며 “노조 활동을 한번 해보자. 일단 화물연대처럼 우리도 임의단체 만들고 민주노총과 같이 해서 한번 해보자, 이런 인식을 갖고 노조를 출범하게 됐다”고 했다.


“사측의 전방위적 노조설립 방해”


택배노조는 2017년 11월에 고용노동부가 교부하는 필증을 받고 합법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 대량 해고, 블랙리스트 등 사측의 전방위적 압박 행위가 반복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노조 필증이 나온 이후에는 무분별하게 자행돼 온 해고는 없는 상태”라면서도 “지금 조합이 계속 확대가 되니깐 회사가 조합원 명단 작성해서 대리점 소장 통해 탈퇴를 종용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들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회사가 법무법인을 통해 대리점연합회라는 걸 조작해 내고, 이 연합회를 통해 대리점에 교섭에 응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본인들은 택배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법률 대응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작업환경의 문제, 공짜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CJ대한통운은 노조를 인정해야”


회사가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택배노동자는 법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노동자가 아니면 노조를 설립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맹점은 회사 측이 교섭이 응하지 않는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김 위원장은 “택배기사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맞냐 아니냐 문제는 여러 가지 다툼의 소지들도 있고,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면서 “다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받는 불이익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정부 정책이고 노조 필증이 나온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회사에 요구하는 건 사측의 노조 인정이다.

김 위원장은 “택배산업 환경이 법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보장이 안 된 것이 많고, 회사도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그래서 일단은 노조를 인정하고 상생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노조원이 전체 택배기사 1만 7천 명 중에 1천 명 정도 되는데, 이것을 갖고 되도 않는 걸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해고된 기사 재취업 문제 등 서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고 서로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사관계 상식”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택배산업은 이익이 적고 택배기사 수수료도 너무 낮은 구조”라며 “이런 걸 해결하려면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같이 요구해 줘야 사회적으로 개선의 흐름이 만들어진다”며 “이런 큰 틀에서 봐야지 구시대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영업이익만 쥐어짜려는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위원장에게 물었다. ‘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노조 활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겠냐고.

“택배기사들은 물량이 적은 월요일 빼놓고는 진이 빠진 상태로 일한다. 주말에는 밥 먹고 자고 밥 먹고 자는 게 반복된다. 가정생활도 없고 이혼율도 높고 친구도 못 만나고 산다.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얘기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이 해 보던가.”

▲ 김 위원장은 노사가 함께 택배산업 육성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팝콘뉴스) © 신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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