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육아일기<3>

독일에는 왜 아이가 많을 수밖에 없을까?

박영진 연구원 | 입력 : 2018/08/30 [11:36]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영진 교육정책담당연구원    

(팝콘뉴스=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영진 교육정책담당연구원) 며칠 전 아이들과 뉴스를 보다가 대한민국 1명당 가임 여성의 출산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반면 독일은 2017년 78만5252명으로 출산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하는 독일은 아이들이 많은 나라였다.
 

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유학을 했고 당시 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하는 학생 엄마였다.

 

독일 정부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주장했으나 2004년에 갑자기 학비를 도입했다.

 

결국 학업을 위한 책과 시설 투자비용으로 인해 나는 학비 5백 유로에 학생회비까지 포함된 6백 유로 정도를 입학과 동시에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80만 원이던 학비는 당시 학생 데모를 일으켰고 큰 불만을 낳았다.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업이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권리이며 정부에게 왜 학비를 내느냐며 반발했다.

 

학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 학생으로서는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시기에 어학 시험을 어렵게 통과해 입학했다.

 

당시 음악 경영학을 전공했던 내가 한 학기를 끝마칠 무렵 첫아이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의 선진 출산지원 제도


산부인과 선생님께서는 내가 학교에 임신 수첩을 내고 사회복지기관을 다녀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가장 먼저 학교 담당자를 찾았다.

 

담당자는 나에게 임신 방학을 할 것인지 물었고 내가 임신 기간 동안 학교를 다니겠다고 말하자 학비가 면제되었다.

 

또 나의 학과를 묻더니 우리 과에는 부모 학생이 많아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공동으로 아이를 돌봐주는 그룹도 있으니 알아보라는 말씀과 함께 장학금도 찾아봐 주셨다.

 

학교에서 부모 학생들을 위한 수많은 장학금 명단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비록 당시 유학기간이 짧은 나는 신청대상이 아니었으나 학력이 높거나 유학기간이 길거나 독일인이면 지원받을 수 있는 부모 장학금이 상당히 많았다.
 
이후 나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회복지기관에도 찾아갔다.

 

복지기관에서는 독일인도 아닌 나에게 우리나라 돈으로 2백만 원 정도의 임신 축하금을 지급해줬다.
 
지원 명목은 임산부를 위한 용돈이며 임부복 구입이나 아이를 위한 기타 비용 지원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나의 담당 선생님인 예거 산부인과 선생님은 헤바메(임신과 출산, 양육을 도와주는 도우미)를 만나는 것을 추천해주셨다.

 

나는 헤바메에 대한 비용을 의료보험에서 전액 지원받을 수 있었다.

 

헤바메는 나에게 임신 기간 동안 하면 좋은 운동과 정신과 상담. 양육 교육 등을 소개해 줬고 임신 기간과 출산 후 나의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을 챙겨주는 조력자였다.

 

내가 헤바메를 만나 대화 나누었던 것 중 가장 인상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그녀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옷이 무엇인지 뭐라 생각하느냐 물었다.


내가 ‘엄마가 직접 만드는 좋은 소재의 옷’이라 대답하자 헤바메는 중고 옷이라고 말했다.

 

이미 10번 이상 세탁된 뒤 화학성분이 최대한 빠진 중고 옷이야말로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옷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중고옷을 파는 가게를 소개하며 가능한 아이를 위한 준비물들을 중고물품으로 준비하는 것을 권유해 줬다.

 

주변 분들의 많은 도움으로 아이를 위한 물건은 차곡차곡 준비되었다.
 
나는 해가 따사로운 날이면 아이가 사용할 물건을 햇볕에 널어놓으며 아이의 만남을 기다렸다.
 
출산이 임박하자 산부인과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병원을 고르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대학병원을 선택했고 내 병원기록은 대학병원으로 넘겨져 출산 일주일 전부터 나는 출산을 준비하게 됐다.

 

산통이 시작되자 나는 미리 만나둔 대학병원의 의사를 만났다.

 

나는 12시간의 산통을 겪다가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됐는데 정신없던 와중에 담당의와 간호사, 심지어 마취과 의사 이름까지 하나하나 소개받으며 수술 방법과 수술 동의서에 직접 서명을 요구하는 모습에 당황했다.

 

또 유럽인에게는 몽고반점이 책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술방에서는 우리 아이의 몽고반점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출산후 6시간 정도 지나자 나는 젖몸살을 겪게 되었다.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온몸이 불덩이인 나를 붙들고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신 분들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약을 먹어도 되지만 최대한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하자는 간호사의 설득과 여러모로 하나하나 챙겨주시는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아이의 출산 확인은 병원 위층에 위치해 있는 독일 관청에서 먼저 진행됐다.
 
수술 12시간 후 의사는 나에게 샤워를 해도 되고 걸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산후통에 대한 두려움에 샤워를 하지는 않았다.

 

당시 내가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나는 병원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걸음마 연습을 했다.
 
신기한 점은 우리나라와 달리 출산부터 퇴원까지 모두 병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서 다른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마 학생으로서 졸업하다


출산후 5일째 나는 집으로 귀가했다.

 

당시 분기별로 내야 하는 병원 이용료 20유로 외에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비용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중에 지불해야 하는 약이 있었지만 추후 수입 상태에 따라 약값도 보험에서 다시 돌려주는 제도가 있다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출산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헤바메가 와서 아이를 돌보는 방법과 나의 건강 상태를 집에서 체크해 줬다.

 

아이를 낳고 학교에 돌아오자 강의실 안에는 수많은 유모차가 보였다.
 
내가 그동안 무심히 느끼고 지나갔던 사소한 것들이 나와 관련된 일들이 되자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엄마 학생들의 유모차의 우는 아기를 찾아가 아이를 안는 모습, 수업 중 수유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에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장치가 있었고 학생식당엔 아이들의 음식까지 같이 준비돼 있었다.

 

나에게 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당신은 누군가의 딸이고, 가족의 구성원이고, 학생이고, 누군가의 동반자이고 엄마다. 하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특혜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할 수 있으니까.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에 이끌려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독일의 학비는 없어졌다.

 

독일은 학업과 학비, 아이의 양육비 때문에 공부를 그만둘 수 없는 사회 구조를 가졌다.

 

학업 중 출산을 권장하는 분위기도 있으며 임신한 외국인에게도 경제적 부담이 적고 많은 지원을 해 준다.

 

독일은 현재 가족부 장관의 교체로 여러 제도적 차원에서 또 다른 변화를 앞두고 있다.
 
나는 이 변화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며 계속 지켜볼 것이다.

 

또한 그 파급이 언젠가 우리에게도 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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