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벽에 가로 막히지 않게…정치자금법 개정안 촉구

▲ ©박수인 기자

(팝콘뉴스=박수인 기자) 노동자, 가난한 자, 소수자의 곁에서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냈던 故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렸다.

노 의원이 23일타계한 후 안치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까지 기다란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그의 죽음 앞에 허망함과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 이들이 남긴 방명록은 서로의 볼을 적셨다.

그는 숨지기 전 남긴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 원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며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지난 2005년 진보신당 대표 시절 삼성 로비 의혹이 있는 ‘삼성 X파일’ 검사 7인의 명단을 폭로했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2013년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국회의원 신분을 잃은 노 의원은 20대 총선을 준비하며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드루킹이 이끈 민간단체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4천만 원을 받은 것이다.

도덕성과 청렴성이 생명인 진보 정치의 무대에서 그가 느꼈을 책임감이 그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끈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따라오는 가운데 정치자금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저지른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계기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발의한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 1명당 연간 최대 1억5천만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엔 최대 3억 원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아닐 경우 모두 불법이며, 후보의 경우 총선 120일 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후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있어야 정치 한다’는 말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4435억2625만 원’. 제20대 국회의원 중 최고 부자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의 재산인데, 서민들은 꿈조차 꾸기 힘든 액수지만 많은 국회의원이 수십억 원대 재산가들이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29일 공개한 2018년 국회의원 재산 신고액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의 신고재산 평균은 22억8246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들에게 최저임금이 7530원에서 8350원으로 오르는 것이 얼마나 피부에 와 닿을지 의문이다.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을 위해 일할 국회의원을 뽑으려면 돈이 없어도 정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지난 25일 국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해 정치자금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정치자금법 개정에 힘을 실었다.

그는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선거가 있는 해가 아니면 정치신인은 정치자금을 모을 수 없다”며 “고비용의 정치는 분명 지양해야 하지만 현역 의원이나 정치신인들이 불법 자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입법자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노회찬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중앙당에 후원회를 설치해 연간 50억 원까지 모금ㆍ기부받을 수 있는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해 통과시키기도 했었다.

이때 노 의원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정당 후원회가 폐지돼 정치자금에 대한 통제가 강화됨으로써 회계투명성이 어느 정도 제고됐지만,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치자금 기부를 위축시켜 정당의 국고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등 부작용이 야기됐다”고 말했다.

모금과 집행의 투명성 제고를 전제로 하는 현실적인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가난한 노동자의 친구였던 故 노회찬 의원이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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