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조사단, 사법행정권 남용 확인 이후 후속조치 없어


(팝콘뉴스=윤혜주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숙원 사업 ‘상고법원’ 도입을 두고 박근혜 정부와 협상 거래를 했다는 정황이 적발됐지만 특별조사단이 고발 등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순된 입장을 밝혀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9월 퇴임식에서 사법부 독립을 외쳤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014년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에 비판적인 일선 판사들을 사찰하고 청와대 입맛에 맞게 재판까지 개입하려한 정황이 밝혀지면서 ‘법 안 지키는 사법부’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朴에 유리한 판결 이용해 정치권과 협상 흔적


지난 2월 12일 출범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린 ‘1차 조사’와 법원행정처가 일부 법관 동향을 수집한 정황이 담긴 문서를 발견한 ‘2차 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3차 조사 일환으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이 담겼다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4대를 조사했으며 그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 동향을 살폈다는 의혹이 담긴 파일 406개와 법원의 재판 개입 의심을 부르는 문서를 적발했다.

지난 2015년 3월 작성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문건에는 “대상자별 성향과 관심사, 정치적 입장 등을 파악해 개인별 맞춤형 설득방안을 수립해야 하며 ‘원세훈 사건’의 경우 적어도 전원합의체의 판단 등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있다.

구체적 접근 방법으로는 “주요 관심사항 관련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이 제시돼 있는 등 독립된 판단을 해야 하는 사법부의 위치로 볼 때 국민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완전히 저버렸다.

또 지난 2015년 7월 28일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 문건에는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과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 등 당시 박근혜 정부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이용해 청와대와 협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특히 “향후 예정된 주요 정치인 재판도 청와대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 이를 상고법원 도입 설득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적시돼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밖에 2015년 7월 27일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와 31일에 작성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등 재판을 정치권과의 거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사법부의 민낯을 드러내는 문건들이 다수 적발됐다.


상고법원 도입 반대 판사 사찰…양승태는 답변 거부


특별조사단은 사법권남용에 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을 두 차례 요구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등 조사 결과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차성안 판사를 사찰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의 동향을 파악하는 혐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8월 당시 전주지법 군산지원 차성안 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상고법원 도입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관할 법원행정처가 차 판사에 대한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조사단이 확인한 문건에 따르면 차 판사의 성격과 가정사, 재판 준비 태도를 비롯해 차 판사와 친한 선후배 판사들까지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에 대해 해산을 유도하거나 법원 운영위원회의 결의로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집착을 드러냈다.

하지만 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확인하고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는 등 후속조치는 취하지 않고 조사를 끝내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상고법원’은 무엇?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고 있는 3심사건 가운데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을 제외하고 민형사 등 일반 사건 등 비교적 단순한 사건만을 별도로 맡아 판단하는 법원을 말한다.

상고법원은 사건에 대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리며 판결 대상자들은 헌법위반과 판례위반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고법원의 판결에 대해 더 이상 항소할 수 없다.

대법원은 지난 2014년 기준 상고사건 약 3만7천여 건을 다뤘으며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이 14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1인당 약 2600 건의 상고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지난 2014년 12월 19일 국회의원 168명이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를 덜기 위해 마련된 상고법원 법률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아직 국회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재임기간 중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국회에 상고법원 개정안이 발의되자 법원장들이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지난 2015년 당시 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에 지나치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또 상고법원 도입이 현실화되면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권한이 더 강화되고 고위직 판사 수가 증가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내에 달성할 최고 핵심과제로 201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에서 목표 달성에만 몰두해 수단·방법의 적절성에는 눈감아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조사를 받을 것인가


불법 사찰을 받은 차성안 판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특조단도, 대법원장도 형사고발 의견을 못내신다면 내가 고발하겠다”며 직접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할 계획을 밝혔다.

특별조사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검찰 고발 등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아 ‘셀프 조사’의 한계를 드러낸 것에 대한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지난 1월 참여연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차장 등을 불법사찰 혐의로 고발한 상태이며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아직도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성남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처벌을 촉구했고,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어떻게 사법부가 이런 천인공노할 사법부 파괴를 할 수 있었는가 분노한다”며 현 사법부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특별조사단이 셀프조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강제수사 여부는 김명수 현 대법원장의 손에 달렸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이번 일로 국민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면서 “아직 보고서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고, 조사단에서 최종적으로 제출 예정인 개인별 정리 보고서를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여러 의견을 모아서 합당한 조치와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수사 가능성을 내비쳐 사법부 셀프 조사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정치적 세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한 장본인이지만, 정작 본인이 삼권분립의 기틀을 뒤흔들어놓으면서 성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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