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팝콘뉴스 윤혜주 기자.

(팝콘뉴스=윤혜주 기자) 소방대원이 취객에게 폭력을 당해 뇌출혈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우리나라는 술에 유난히 관대하다’는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대전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 우리나라 국민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10월 25일부터 11월 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5세 이상 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주류 소비ㆍ섭취 실태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1회 평균 음주량은 소주 6.1잔이었다.

남자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량 5.9잔보다 1.3잔 초과한 7.2잔, 여성의 경우 세계보건기구 권고량 2.9잔보다 1.8잔 초과한 4.7잔이었으며, 술자리 분위기와 권유 등으로 인해 음주자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음주량 4.3잔보다 실제 더 많이 마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술을 마신 사람들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마시지 않은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에 노출되기 쉽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술을 마신 상태의 성폭력 범죄 건수는 ▲2012년 6181건 ▲2013년 7383건 ▲2014년 7967건 ▲2015년 8248건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분석됐다.

특히 공무집행방해 입건자 총 1만4556명 가운데 1만37명이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이 같은 통계는 술에 취한 사람 ‘주취자’가 우리나라의 사회악이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술잔이 오고가는 가운데 친목 도모를 하며 술에 함께 취해서 속까지 드러내 보여야 친해졌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물론 술을 마시면서 진심으로 친해지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술로 친목을 다진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유발과 폭력, 성폭력 행사 등 실제 지나치게 술을 마시고 도를 넘어선 경우가 허다하게 등장하고 있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일부 취한 사람들은 술김에 가족들을 때리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술에서 깬 뒤 그들의 변명은 이구동성으로 “술에 취해서”, “기억이 없어서”이며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재판장 앞에 서서도 “만취 상태였다”, “술김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위다”라며 심신미약 상태라고 일관된 변명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형법 제 10조 1항에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2항에서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위자가 심신상실과 심신미약 등 심신장애인 상태에서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거나 감경한다는 취지로 나온 법조항이지만 법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중증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 조항에 근거해 감형을 주장하며 악용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일명 ‘주취감형’.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자신이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등 어떤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술 양을 조절하지 못해 결국 만취했으며, 그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면죄부를 달라고 우기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범죄자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경우가 많다.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잘 알려진 범죄자 조두순의 경우 검찰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조두순이 술에 취한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판단해 징역 12년으로 감형 받았으며 2020년 12월 31일 출소일을 앞두고 있다.

또 지난해 1월 5일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은 서울 청담동 소재 술집에서 종업원들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모든 혐의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1심 재판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우발적 범행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이렇게 술에 관용을 베푸는 우리나라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지난달 2일 전북 익산시에서 취객 48세 윤모 씨를 구조하던 소방 구급대원 51세 강연희 씨는 윤모 씨에게 심한 욕설을 들으면서 5~6차례 세게 머리를 강타 당했으며, 이 사건 이후 구토와 경련 증세를 보여 지난달 24일 병원에서 뇌출혈과 폐부종 진단을 받아 수술했지만 결국 사망한 것이다.

CCTV 속 윤모 씨는 “공무원들 때려봐야 벌금 5백만 원이면 끝나는데 5백만 원 내면 되지 뭐, 야, 이X자식아” 등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故 강 씨는 19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2천 명 넘는 사람들을 구한 소방대원으로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이다.

고인의 분향소를 찾은 유족과 동료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소방청이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3년 동안 발생한 구급대원 폭행사건이 총 564건이라고 밝혀 하루 건너 하루 꼴로 구급대원이 폭행을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아직까지 강력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취객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직접적으로 취객을 상대하는 소방대원에게만 일어나리란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취객들은 기억을 잃었다는 그들의 논리에 따라 우리들의 가족, 친구, 연인에게 범죄를 가할 수 있는 개연성은 언제든 남아 있다는 것이다.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귀가하는 고등학생들과 야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는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들,그리고 밤길 공원에서 홀로 산책하는 노인들 등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옆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폭언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휘두를 수 있는 취객들이 지나갈 것이다.

모든 범죄 행위에 엄중해야 할 법이 일반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한 채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법의 형평성이 주취자들에 대해 너그럽다면 주취로 인한범죄를 국가와 헌법이 방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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