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 법정관리 법원에 드리는 글


(팝콘뉴스=독일정치경제연구소 정미경 소장)2018년 4월 20일 성동조선에 대한 법원의 법정관리가 개시되었다. 법원은 약 한 달간 상황을 조사한 후 곧 회생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한다. 법원의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한다.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정미경 소장 ©팝콘뉴스

성동조선 문제의 시작은 “키코” 였다.


2001년 성동조선해양이 설립된 이후 성동조선은 2006년 9백 톤급 골리앗크레인, 3만 톤급 플로팅도크를 자체 제작 및 가동하고, 세계 최초로 GTS(Gripper-Jacks Translift System) 공법을 개발하였다. 2006년 선박 종(縱)진수 세계 최단 기록(5시간)을 달성했다. 2007년 클락슨은 성동조선을 수주잔량대비 DWT 기준 세계 5위로 보고한다. 2008년에는 다시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여 선박 종(縱)진수 세계 최단 기록 경신(3시간)에 도달한다. 사이드 시프팅(Side Shifting) 공법을 개발하고, 육상건조 사상 세계 최대 벌크선(17만 톤급)을 진수한다. 2009년 경제위기 하에서도 육상건조 사상 세계 최초로 컨테이너선(6천5백 TEU급)을 진수하고 10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09년 12월 클락슨은 Capesize급 벌크선 인도실적 및 수주잔량 세계 1위로 성동조선을 소개한다. 2010년 경제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성동조선은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 외에도 성동조선의 기술실적과 수출에 기여한 공로는 한정된 지면을 통해 다 소개하기에 어려울 정도이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견조선소를 주저앉힌 것은 누구인가? 시황 부진 때문인가? 달리는 중견조선사의 엔진을 고장 낸 것은 환헤지 파생금융상품 키코(Knock-In, Knock-Out)였다. 조선소가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려면, 조선소가 파산할 시 선주가 선박건조를 위해 지불한 선수금을 되돌려 주겠다는 보증서인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을 은행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당시 은행들은 조선사에 RG를 발급하는 조건으로 키코상품 가입을 권했다. 한마디로 RG를 발급받으려고 은행 문을 두드린 조선사 입장에서 키코 가입계약을 거부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성동조선은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을 비롯한 다수 은행에서 키코에 가입해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다. 성동조선의 2009년 기준 재무제표는 ‘당사는 외화선수금 입금, 외화차입금 상환 시에 발생할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회피를 목적으로, 우리은행 외 7개 은행과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하였으나, 파생상품에서 예측하지 못한 환율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거액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발생했다’고 보고한다. 국민은행, 대구은행, 신한은행, 씨티은행, 외환은행, 우리은행, 제일은행, 하나은행 등이 성동조선의 키코 피해와 관련된 은행들이다. 2009년 성동조선은 전년 대비 1조5000억 원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중 전년 대비 추가된 통화선도 관련 부채만 8360억 원이었다.

성동은 2007년 매출 5699억 원, 영업이익 254억 원, 2008년 매출 1조9억 원, 영업이익 1662억 원을 달성했다. 수주량이 급증하고 사세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성동은 키코로 1조 원대의 손실을 입고 기업의 엔진이 고장났다. 2010년에는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2018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시황이 나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시황 부진으로 더 큰 손실을 낸 기업들도 법정관리에 가지 않았다. 성동은 자율협약 하에서도 2011년 20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고, 2년 연속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4년 LR2 탱커 수주잔량 세계 1위(클락슨 리포트)를 기록하였다. 2015년 선박 인도 200척을 달성하였다. 수주영업과 매출의 문제가 아니었다. 성동조선은 키코가 촉발한 유동성 문제를 끝내 풀지 못했다.


피해자와 피의자가 뒤바뀐 사건


성동조선의 법정관리에서 이제 법원의 공정한 판단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피해자와 피의자가 뒤바뀐 측면이 있다. 현재 키코 사건은 “제1금융권 은행들이 고객에게 상품 자체가 사기인 것을 알고 판 것”이라고 그 사기성이 주장되어 다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2017년 말 금융행정혁신위위원회는 피해기업 재조사를 권고했다. 정부는 “감독당국은 키코 사태를 돌아보며 스스로의 역할 부재를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신용보증기금, 신용회복위원회 등 금융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피해 기업을 상대로 지원방안을 찾고 있다.

그간 조선소들은 자신의 KIKO 피해에 대해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시황이 나빠, 기 수주된 선박들의 글로벌 건조가격이 20~30% 하락한 상태였고, 선주와 건조계약을 하면서 계약조건에 조선소가 법정관리로 갈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선주에게 권한을 주었다. 따라서 조선소가 RG를 발급해준 은행을 상대로 키코 관련하여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면, RG를 발급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은행을 상대로 어떠한 민형사상의 문제도 제기하지 못한 채 문을 닫거나 아니면 엄청난 부채를 떠안았고, 조선소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동조선뿐 아니라 21세기조선, 세광중공업, 삼호조선 같은 조선소들이 이렇게 KIKO와 RG 사이에서 피멍이 들었다.


조선업 위기 상황에서 청산할 것과 보존할 것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조선업은 금융 없이 사업이 불가능하다. 조선산업과 금융의 건실한 협력이 경쟁력 있는 조선산업의 전제이다. 이를 위해 금융은 성공적인 건조 프로젝트를 알아볼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키코 사태에서 보여준 부끄러운 영업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또 산업은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설비, 기술, 인력을 요소로 저마다 고유한 생산성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시간, 노력, 경험 없이 돈만 주고 살 수 없다. 성동조선의 노사는 자율관리 하에서도 기업의 회생을 위해 기술개발과 수주영업의 기록을 경신하고 매출을 향상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 이러한 설비, 인력, 기술이 대안 없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하며 머물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청 앞 뢰머광장에는 유스티치아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정의의 여신상이다. 한 손엔 저울을 다른 한 손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신중함, 편견의 배제, 정확함, 그리고 공정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칼은 정의를 집행하는데 있어 엄격함을 상징한다. 유스티치아라면 성동조선에 대해 어떠한 판결을 내렸을까? 최근 성동조선 법정관리 법원은 구체적인 성동의 회생계획이 마련되지도 않았는데 인력 감축 계획을 승인했다고 한다. 편견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균형 있는 저울질을 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법정관리 하의 성동조선 문제를 공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성동조선 노사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산업을 보존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법원에 기대한다.

▲ 신중함, 편견의 배제, 정확함, 그리고 공정성을 나타내는 유스티치아 정의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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