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정미경 소장 © 팝콘뉴스

(팝콘뉴스=독일정치경제연구소 정미경 소장)키코(KIKO, Knock-In, Knock-Out). 환율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만든 파생금융상품으로 은행권에서는 환율이 정해진 구간 사이에서 움직이면 위험에 처할 확률이 낮은 안전한 상품이라고 홍보했고, 2006~2008년 초 주로 중소기업이 가입했다.

2007년 말까지 은행의 권유로 또 다른 금융상품에 끼어 팔기 식으로 7백여 중소, 중견기업이 키코에 가입했다. 그런데 2008년 말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환율이 정해진 구간을 넘어 급등, 달러당 1500원대를 돌파하자, 키코에 가입했던 알토란 같은 7백여 개 중소, 중견기업들이 총 3조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고 대부분 파산했다.

2008~2009년 경제위기 이후에 부도가 난 중소 중견조선소의 대다수도 키코에 가입해 피해를 입었던 기업들이다.

당시 은행은 중소조선소에 RG(선수금환급보증)를 발급하면서 끼어 팔기 식으로 (반)강제로 조선소를 키코에 가입시켰다.

21세기조선과 같은 중소조선소도 키코 가입액이 1조2천억 원에 달했고, 키코 피해액이 3,800억 원에 달해 문을 닫았다. 아이앤피, 삼호와 같은 중견조선소들도 키코의 피해를 입고 도산했다.

아이피앤의 경우 건조하기가 어렵다고 소문난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지원선종 AHTS(Anchor Handling Tug and Supply vessel)를 독일 노드캐피탈(NORDCAPITAL)사에서 8척, 척당 8,700만 불이라는 고가에 수주를 받아 건조했다.

먼저 손해를 감수하면서 두척을 건조했고, 그러면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냈다. 세 번째 배를 건조하며 드디어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무렵 키코 사태로 안타깝게 조선소 문을 닫아야 했다.중소조선소의 키코 피해액은 보통 1천억에서 1천오백억 원에 달했다.

성동조선해양의 경우 키코로 인한 직접적 손실만 8천억 원에 달했다. 이렇게 파생금융상품이 중소조선 위기를 촉발했다. 조선산업 위기와 금융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00년대 중국의 급성장은 세계 원자재 수입량과 완제품 수출량을 늘려 물동량이 급증했다. 해운업과 조선업의 수요도 급증했다. 2006~2007년은 한국 조선업의 르네상스였다. 한국 조선업 매출액은 2001년 대비 불과 5~6년 만에 3배가됐으며, 블록 하청업체들도 저마다 직접 배를 만들겠다고 뛰어들었다.

금융권 역시 따지지 않고 해운사에 자금을 빌려주고 조선사에 지급보증을 서 주었다. 선박건조에 대한 컨설팅 팀이 없는 일부 시중은행들은 건조 프로젝트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채 지급보증을 해 주었다고 한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기가 위축되자 은행은 돈줄을 줄였고, 따라서 건조에 직접 나선 (블록)하청업체들이 기술력과 설계력이 달려 도산하기 시작했다.

2008년 말 한 증권사는 우후죽순처럼 생긴 신생 조선소의 과잉투자액 약 10조 원이 금융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금융이 2차적 심사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조선소에 돈을 대주고 보증을선 것이 금융의 발목을 잡았다.

이러한 10년을 견디고 현재 몇 안 되는 중소조선소가 생존해 있다. 현재 생존하는 중소형 조선소 및 기자재업체는 2008년-2009년 세계경제 위기라는 엄중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이겨낸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다. 실력 있는 기업만 살아 남았다.

이들은 소형선인 해양플랜트지원선, 첨단어선, 슈퍼요트 등 고부가가치 특수선 분야에 진입할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해양플랜트지원선은 해양플랜트 시장과 연동돼 수요가 발생하는데 이들 기업에게는 기회의 시장이다. 시장 잠재력이 큰 첨단어선도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슈퍼요트를 포함한 레저선박은 약 300억 불 규모의 세계시장이 존재한다. 또 중대형 조선소는 다양한 선박의 건조 경험을 갖추고 있어 선주 입맛에 맞게 선박을 설계할 능력이 있다. 고성능선박을 경쟁력 있게 건조할 능력도 있다.

현재 중소형 조선업체의 주력 선종인 상선, 1000톤 이상 중소형 상선이 세계적으로 약 70만 척 운항된다. 그간 국제선급연합(IACS) 공통법규로 공통구조규칙(CSR)와 통합공통구조규칙(CSRH)이 발효돼 선박설계 수명이 20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나 수주공백이 심화됐다.

이제 곧 상선분야 대체수요가 발생될 것이다. 일단 시작되면 상선 건조경기는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이며, 이제 다시 찾아올 호황을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금융이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조선해양산업은 금융 없이 사업을 할 수 없다. 선박을 수주해도 선수금환급보증(RG)이 되지 않으면 배를 건조할 수 없다.

그럼 왜 금융권이 아직도 RG 발급을 꺼리는가? 저가 수주가 문제인가?

조선소들은 은행이 수익률이 확실한 프로젝트도 지급보증을 해 주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국의 중소조선소는 기술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세계조선시장의 수주가 많이 쪼그라들어도, 남아 있는 마지막 수주를 한국 조선소에 주고자 한다. 그런데 수주를 해 와도 RG 발급을 받지 못해 건조할 수가 없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랄까. 그간 조선분야의 투자와 보증으로 막대한 손실은 본 금융권이 조선 신조 자체를 수익률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외면하고 있다. 다시 금융의 2차적 심사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해양산업과 같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양질의 금융서비스가 핵심이다.

조선산업에 다시 기회가 오고 있다. 다시 찾아 올 호황을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묻지마 투자도 문제였지만 조선 신조 자체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과거 조선산업과 금융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산업의 전문성을 강화해야한다. 건조프로젝트에 심사기준을 정하고 심사를 담당할 금융기관에 전문가가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심사할 심사역으로 조선산업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배치하고 프로젝트를 심사할 전문성을 높여야한다.

독일의 경우에는 산업은행에 해당하는 독일재건은행(Kreditanstalt für Wiederaufbau)이 산하에 가장 큰 자회사로 KfW IPEX-Bank이라는 은행을 두고 있다.

이 은행은 수출입산업의 투자자금을 대출한다. 항구, 공항, 도로, 교량 및 터널, 철도, 선박, 비행기, 통신, 에너지 및 각종 제조 수출기업에 투자자금을 대출한다.

조선해양산업의 경우 독일 및 유럽의 선박과 해상구조물의 파이낸싱, 건조를 위한 구매자금 대출, 선주를 위한 투자자금 대출, 선급금 및 인도금 대출, 조선소 건설 대출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 해양금융 사례도 벤치마킹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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